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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12-14 20:34
영어 발음, 꼭 미국식이어야 하나요?
 글쓴이 : Philip
조회 : 5,793  
 
 
 
 
 
우리 아이 발음, 꼭 미국식이어야 하나요? 학부모님들과 수강 상담을 할 때마다 가장 많이 받는 질문들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인 듯 합니다. 개인적으로, 꼭 미국식일 필요는 없다! 고 생각합니다. 영어로 자유롭게 의사소통 하는 것 자체를 목표로 하고 있다면, 구태여 미국식 발음을 쓰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수준 높은 영어를 구사할 수 있고, 영어권 국가들에 나가 자신의 꿈을 펼치는데 큰 지장은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미국이 한국에 가진 영향력 때문인지, 우리 사회는 미국식 발음에 큰 가중치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당장 이 글을 읽는 우리들부터 살펴보면 됩니다. 미국식 발음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저조차, 미국식 발음을 들으면 무의식적으로 "더 세련됐다"고 느끼곤 합니다. 그렇다 보니, 만일 어떤 아이가 미국식 발음을 구사한다면, 다른 아이들보다 더 앞서 있다고 평가를 받는 것이 지금까지의 냉정한 현실이긴 합니다.
 
 
 
 
하지만 반드시 미국식 발음을 사용해야 영어권 국가들에서 활동하며 성취를 이룰 수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정통 영어는 영국식 영어이지 미국식 영어가 아니며, 미국은 영어라는 언어적 관점에서 범영어권 국가들의 구성원들 중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수강생 분들 모두 텔레비전에서 세계적 명사들이 영어로 연설하는 모습을 보셨을 텐데요. 그들의 발음도 미국인이 아니라면 대부분 미국식 발음이 아닙니다. 
 
 
 
 
한국 최고의 석학 중 한 분이시고 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진 도올 김용옥 교수.  미국 유학 생활을 하셨고, 하버드대학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으신 분이기도 합니다. 훗날 이 분의 주옥같은 강의들을 접하실 기회가 있다면, 한 번 이 분의 영어 발음에도 귀 기울여 보시길 바랍니다. 미국 유학파이고 미국 최고의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으신 분인데도, 발음이 그다지 '버터 바른 것처럼' 들리진 않습니다.
 
 
 
 
약 두 달 전, EBS 제작진이 기발한 실험을 해서 큰 화제를 모은 적이 있습니다. 미국식 발음을 사용하지 않는 어떤 동양인의 영어 연설 장면을 한국인들과 미국인들 앞에서 틀어준 뒤,  그들의 반응을 체크하는 실험을 했던 것입니다. 연설이 끝나자, 한국인들은 "100점 만점에 40점! 촌티난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지만, 미국인들은 "의사를 명확히 전달하는 고급 어휘들이 사용된 수준 높은 연설"이라고 답변했습니다.
 
 
 
 
누구의 연설이었을까요? 바로 반기문 UN 사무총장의 영어 연설이었습니다. 이 실험은 그 자리에 있던 한국인 분들을 겸연쩍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미국식 발음을 사용하지 않아도 UN 사무총장도 할 수 있습니다. 그건 반기문 총장 뿐만 아니라 코피아난 총장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마 두 사람이 'UN 사무총장'이라는 근사한 직함을 숨기고 한국에서 생활했다면,  영어 발음 때문에 무시를 당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예전에 옥스포드대 총학생회와 교류하기 위하여 이 대학 교정을 방문했을 당시, 대학 관계자 분들로부터 "대영제국에 속해있던 국가 시민들은, 누가 버터 바른 듯한 미국식 발음을 쓰면 고의적으로 못 들은 척 한다"는 우스개소리까지 들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나칠 정도로 '미국식 발음' 만을 제대로 된 발음으로 여기는 선입견이 있습니다. 이런 걸 '미국식 발음 사대주의'라고 표현하면 너무 지나친 비약일까요? 
 
 
 
 
사실, 이런 글을 쓴 이유는 우리 학원 어떤 초등학생 수강생의 어머님 및 해당 수강생과의 상담 때문입니다. 외국 경험도 없고 나이도 어린 것을 고려할 때, 이 수강생은 영어가 매우 유창한 편입니다. 그럼에도, 주변 친구들은 모두 미국식 발음을 쓰는데 자신만 그렇지 못하다며 몹시 슬퍼하고 있었습니다. 이 수강생의 주변 친구들은 아무래도 자식 교육에 신경 많이 쓰시는 학부모님들 자녀분들인 듯 하더군요. 
 
 
 
 
 
미국식 영어 발음이 뭐라고, 어린 아이들까지 이렇게 상처를 받아야 하는가 싶어 기분이 착찹했습니다. 이건 비단 수강생 분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학원 필리핀 선생님들은, 저로 하여금  "필립씨가 이 지역 좋은 선생님들 다 데려갔어!" 라는 우스개소리까지 듣게 할 정도로, 이 분야에서는 유능하신 분들입니다. 심지어 이런 필리핀 선생님들 마져도, 가끔은 미국식 영어 발음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 사회 분위기가 금새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 학원을 방문하시는 많은 분들께서 미국 선생님을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미국식 영어 발음을 익히겠다는 의도 자체가 부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기왕 듣게 된 영어회화 수업에서  더 인정받는 미국식 발음을 익히겠다는 것, 역시 딱히 나쁜 것도 아닙니다.  저 역시 미국 수업반을 개설해 예전보다 좀 더 많은 고객 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핵심은, 장기적으로 우리 사회 인식도 이제 바뀔 때가 됐다는 것입니다. 물론 통역사나 번역사 등 영어를 주업으로 할 예정이고 미국에서 활동할 계획까지 있다면, 당연히 미국식 발음을 익혀야 합니다. 그러나 딱히 그런 것도 아닌데, 미국식 영어 발음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미국인이 질문했을 때 한 번에 듣지 못했다고 부끄러워 하는 사회 분위기.  쓸모없는 사회적 에너지 낭비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구태여 명제에 당위성을 부여하지 않더라도, 영어 사용이 가능한 한국인들의 활동 영역도 미국 일변도에서 점차 다른 나라로 확장되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에, 꼭 미국식 발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깨닫는 한국인들도 점차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만큼,  우리 사회의 인식도 점차 변화되지 않을까 합니다. 언어의 본질은 소리가 아닙니다. 의사소통입니다. 몸짓만 보고 뜻만 통해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는 것이 우리네 삶입니다.